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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하남문화원 춘계 유적 답사(강원도 고성)

하남문화원윤재민 │ 201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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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일: 2016년 4월 22일(금)

답사지: 강원도 고성 일원

답사인원 : 82명

 

1차 답사지-청간정  



위치 : 강원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1971.12.16 지정)

토성면 청간리 동해안 산록에 있는 청간정(淸澗亭)은 설악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만경청파가 넘실거리는 기암절벽 위에 팔각지붕의 중층누정으로 아담하게 세워져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월출시의 장엄함과, 밀려오는 파도가 마치 뭉게 구름이 일다가 안개처럼 사라져 가는 황홀경으로 관동팔경중 수일경으로 손꼽히고 있다.  

청간정은 본래 청간역의 정자였다고 하나 그 창건연대나 창건자는 분명치 않다. 다만 조선시대 중종15년(1520)에 간성군수 최청(崔淸)이 중수한 기록이 있어 정자의 건립은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이후 현종 3년(1662)에 최태계(崔泰繼)가 중수하였으며 거의 같은 시기에 당시 좌상 송시열(宋時烈)이 금강산에 머물다가 이곳에 들려 친필로 '청간정(淸澗亭)'이란 현판을 걸었다. 고종 21년(1884)화재로 전소된 채 방치되었다가 1928년 토성면장 김용집(金鎔集) 등의 발의로 현재의 정자를 재건하였다.

1953년 5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정자를 보수하였으며, 현판도 이대통령의 친필로 개판하여 현재에 전하고 있다. 1980년 8월 1일 최규하 대통령이 동해안 순시중 풍우로 훼손되고 퇴색한 정자를 보수토록 지시함에 따라 같은 해 10월 1일에 착공하여 다음해 4월 22일에 준공을 보았다.  

 

2차 답사지  - 왕곡마을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에 위치한 왕곡마을의 형성은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말 두문동 72현 중의 한 분인 양근 함씨 함부열이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반대하여 간성에 낙향 은거한데서 연유하며 그의 손자 함영근이 이곳 왕곡마을에 정착한 이후 함씨 후손들이 대대로 이곳에서 생활해 왔다. 특히,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 군락이 원형을 유지한 체 잘 보존되어 왔기에 전통민속마을로서의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0년 1월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오고 있다.

 

3차 답사지- 통일 전망대

동해안 지역의 금강산 비로봉(毘盧峰:1,639m)과 해금강(海金剛)을 바라볼 수 있고, 나아가 반공교육에도 도움을 줄 목적으로 1983년 7월 26일 착공해 이듬해 2월 9일 준공하였다. 북위 38.35˚에 위치하며, 해발고도 70m에 높이 8.8m의 2층 슬래브 건물이다. 연건평은 104평이며, 1층과 2층 각 52평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망대에서 금강산까지는 최단 16㎞, 최장 25㎞밖에 되지 않아 일출봉(日出峰:1,552m)·월출봉(月出峰)·채하봉(彩霞峰:1,588m)·육선봉(六仙峰)과 집선봉(集仙峰)·세존봉(世尊峰)·옥녀봉(玉女峰:1,424m)·신선대(神仙臺)·관음봉(觀音峰) 등 금강산의 대표적인 봉우리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고봉인 비로봉은 맑은 날에만 보인다. 해금강은 더욱 가까워 만물상(萬物相)·부처바위·백바위·구선봉(九仙峰) 외에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로 유명한 감호(鑑湖) 등 해금강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4차 답사지- 건봉사

건립시기 : 520년(법흥왕 7)

소재지 :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금강산 

6·25전쟁 전까지는 31본산의 하나였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520년(법흥왕 7) 아도(阿道)가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으며, 533년(법흥왕 20) 부속암자인 보림암(普琳庵)과 반야암(般若庵)을 창건하였다. 758년(경덕왕 17) 발징(發徵)이 중건하고 정신(貞信)·양순(良順) 등과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10,000일 동안 염불을 계속하는 모임)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만일회의 효시이다. 

6·25전쟁 때 이 절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는데, 당시까지 현존하였던 당우로는 대웅전·관음전·사성전·명부전·독성각·산신각·단하각·진영각·범종각·봉청루·보제루·대지전·동지전·서지전·어실각·어향각·동고·낙서암·극락전·만일원·보안원·선원·원적암·사무소·불이문·여관·장의고·성황당·수침실(水砧室) 등 총 642칸에 이르렀다.

건봉사에 봉안된 진신 치아사리는 신라시대 자장법사가 636년(선덕왕 5년) 중국 오대산에 건너가 문수보살전에 기도 끝에 얻은 진신사리 100과중 일부입니다.

자장법사는 643년 귀국하여 이 사리들을 통도사,월정사,법흥사,정암사,봉정암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5차 답사지- 박인환 문학관 

위치 :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인제로156번길 50 (인제읍) 

본관은 밀양(密陽). 1926년 강원도 인제 출신. 아버지 광선(光善)과 어머니 함숙형(咸淑亨)의 4남 2녀 중 장남이다.

1939년서울 덕수공립소학교를 졸업하고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41년 자퇴하고, 한성학교를 거쳐 1944년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해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8·15광복으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그 뒤 상경하여 마리서사(茉莉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김광균(金光均)·이한직(李漢稷)·김수영(金洙暎)·김경린(金璟麟)·오장환(吳章煥)·김기림(金起林) 등과 친교를 맺기도 하였다. 1948년 서점을 그만두면서 이정숙(李丁淑)과 혼인하였다. 그 해에 자유신문사, 이듬해에 경향신문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1949년에는 김병욱(金秉旭)·김경린 등과 동인지 ≪신시론 新詩論≫을 발간하였으며, 1950년에는 김차영(金次榮)·김규동(金奎東)·이봉래(李奉來) 등과 피난지 부산에서 동인 ‘후반기(後半紀)’를 결성하여 모더니즘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51년에는 육군소속 종군작가단에 참여한 바 있고, 1955년에는 직장인 대한해운공사의 일 관계로 남해호(南海號) 사무장의 임무를 띠고 미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955년 첫 시집 ≪박인환선시집 朴寅煥選詩集≫을 낸 뒤 이듬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