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사업

모두에게 사랑받는 하남문화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갤러리

2016년 하남문화원 추계유적답사-경기도 안성

하남문화원윤재민 │ 2016-09-26

HIT

1760

답   사   일: 2016년 9월 22일 

답 사 장 소: 경기도 안성 일원 

답사참여자: 66명 

 

1. 안성맞춤 박물관   

 

안성맞춤박물관은 2002년 개관했으며, 안성시 대덕면 내리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입구에 있다. 유기를 중심으로 안성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함께 접할 수 있는 테마박물관 으로서 산학협력 모델의 박물관이다. 지상 2층, 지하 1층,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기 전시실, 영상실, 기획 전시실, 농업역사실, 향토 사료실, 세미나실, 학예연구실, 수장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기전시실은 유기의 역사, 제작 방법별 유기분류, 유기제작과정 모형, 제기, 반상기, 무구, 불기 등 생활속에 쓰이는 다양한 유기를 전시하고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곳곳에 영상물을 설치하였다. 특히 터치스크린을 통해 안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농업역사실은 안성 농업의 역사와 계절에 따른 농경모습, 안성의 특산물이 전시되어 있어 과거와 현재의 안성농업을 알수 있다. 향토 사료실에는 안성의 옛모습이 담긴 사진, 안성장시재현, 안성남사당, 불교문화재 등 안성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2. 청룡사(靑龍寺)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28번지에 있는 전통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절이며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의 서운산 자락에 있다. 조선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의 원찰이었다.

고려 원종 6년인 1265년에 명본(明本)이 창건하여 대장암(大藏庵)이라고 부르다가, 공민왕 13년인 1364년에 나옹이 크게 중창하고 이름을 청룡사로 개칭했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던 나옹이 이 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고려 시대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대웅전은 대한민국의 보물 제824호로 지정되어 있고, 대웅전 앞에 명본국사가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삼층석탑과 동종(銅鍾) 등 문화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3. 칠장사(七長寺)

칠장사(七長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조선 영조 9년(1773년)에 간행한 칠장사 사적비(事蹟碑)에 의하면 고려시대 혜소국사에 의해 중수된 기록이 있으나 초창된 시기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문헌 등을 통해 볼 때 10세기경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칠장사는 신라 선덕여왕 5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이 전하며, 고려시대 현종 5년(1014)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칠장사와 칠현산이란 이름은 혜소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일곱 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되었다.

고려 우왕9년(1383년)에 왜구의 침입으로 충주 개천사에 있던 고려조의 역대실록을 이곳에 옮겼을 정도로 당시 교계에서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공양왕1년(1389년)에 왜구의 침입으로 전소되어 폐허로 내려오다가 조선시대 중종 1년(1506년)에 흥정이 중건했다고 한다. 이후 인종 1년(1623년)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원찰로 삼아 사세를 크게 중창했다고 전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원통문, 사천왕문, 명부전, 나한전 등을 비롯하여 17등의 건물이 있으며, 혜소국사비, 철제당간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4. 매산리 석불입상(梅山里石佛立像-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7호)

높이 5.7m. 너비 2.5m.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7호. 사각의 보개(寶蓋)를 제외한 신체는 전체가 하나의 화강암으로 조성되었다.

 이 작품은 영조대에 최태평(崔太平)이라는 졸부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빈민 구제 와 호국(護國)의 염원을 담아 조성한 것이 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혹은 고려 고종 19년(1232년) 몽고의 대장 을 살해하고 많은 공을 세운 김윤후(金允 侯)와 송문주(宋文周)의 업적을 추모하기 위 해서 고려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양식적 특징으로 미루어 고려 말기 이전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원통형의 높은 관 위에는 사각형의 보개가 얹혀져 있다. 넓적한 얼굴에 눈은 옆으로 길게 뻗어 있다. 얼굴에 비해 작고 나지막한 코와 조그마한 입 등 전체적으로 원만한 얼굴 모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납작하게 뒤로 붙은 귀는 어깨에 닿을 듯하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이 작품은 고려시대 유행하였던 비슷한 유형의 충청남도 논산의 관촉사(觀燭寺) 석조보살입상, 부여의 대조사(大鳥寺) 석조보살입상과 비견되는 예이다. 그보다 크기도 작고 옷주름 표현 등에서 더욱 형식화가 진행되었으며 조각의 수법도 치졸하다.

이처럼 토속성 짙은 가면과 같은 얼굴 모습, 원통형 고관(高冠) 위의 사각형 보개(寶蓋), 굴곡 없는 돌기둥 모양의 거대한 신체, 도식화된 옷주름 등의 특징으로 미루어 대체로 고려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같은 거불(巨佛) 형식은 논산의 개태사(開泰寺) 석조삼존불상을 계승한 일련의 불상들로 충청도·경기도 일대에서 고려시대에 주로 제작되었다



 

5.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 (安城 奉業寺址 五層石塔-보물 제435호)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 (安城 奉業寺址 五層石塔-보물 제435호

지금은 주변이 경작지로 변한 봉업사(奉業寺)의 옛터에 위치하고 있는 탑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하나로 짠 두툼한 널돌 위에 올려 완성하였는 데, 이 때의 석재가 두툼한 탓인지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준다. 기단 위의 탑신은 1층 몸돌만 4장으로 이루어졌고 나머지는 한 돌로 구성하였다. 각 층의 네 모서리에는 폭이 좁은 기둥을 새겼다. 1층 몸돌 남쪽면 중앙에는 작은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만들어 놓았으나 모양만 새기는 형식에 그치고 말았다. 지붕돌은 얇고 추녀는 거의 수평을 이루었으며 끝에서의 치켜올림도 미미하다.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탑의 전체적인 체감도 적당하지 못하고, 각 부의 조각도 형식에 그치고 있다. 신라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석재의 조합 방식은 우수하나, 기단에 새긴 조각이 형식화 되는 점 등에서 약화되고 둔중해진 고려석탑 특유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자료출처 : 『문화재대관(보물편·석조2, 개정판)』

다음백과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