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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응(朴慶應) : 1584년(선조 17) !1663년(현종 4)

하남문화원 │ 20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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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응(朴慶應) : 1584년(선조 17) !1663년(현종 4)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일옹(一翁)이며, 통훈대부 전현감(前縣監) 박신(朴信)의 아들이다. 건원능 참봉(健元陵參奉)으로 제수받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금오랑으로 왕을 모시고 남한산성으로 갔다. 1646년(인조 24) 그의 아들 가운데 첫째 박창문(朴昌文)·셋째 박진문(朴振文)·다섯째 박이문(朴以文)이 모두 생원시에 합격하는 경사를 누렸다. 당시 그의 벼슬은 안산(安山)군수였다. 이어 박창문은 1651년(효종 2) 별시문과에 급제하였고, 박이문은 1660년(현종 1)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한편, 넷째 아들 박흥문(朴興文)은 1654년(효종 5) 생원이 된 후, 1669년(현종 10) 식년문과에 급제하는 등 5명의 아들 가운데 3명이 문과에 급제하였다. 박경응은 일찍이 학문이 뛰어나 과거장에서 이름을 떨쳤음은 물론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을 외우고 글읽기를 좋아하였다. 특히, 박경응은 자신의 도와 마음 자세를 다듬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유고(遺稿)로는 일옹집(一翁集)』만이 전해지고 있으며, 묘는 하남시 풍산동에 있다. <참고문헌>『朴慶應墓碣』 ; 『廣州郡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