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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규(王規) : ? ~ 945(혜종2)

하남문화원 │ 20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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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규(王規) : ? ~ 945(혜종2) 고려 초기 광주(廣州)지방의 호족출신으로 태도 왕건을 받들어 대광(大匡)에 이르렀다. 오아규는 두 딸이 태조의 제15비(妃) 광주원부인과 광주원군을 낳은 제16비 소광주원부인에 책봉 되자, 광주의 지방세력을 기반으로 한 왕실의 외척으로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에 대한 기록 가운데 하나인 강원도 영월(寧越)의 흥녕사징효대사탑비(興寧寺澄曉大師塔碑)를 보면, 왕규가 흥녕사 조성에 태조 왕건과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하남지역의 천왕사를 비롯한 대사찰 조성에도 왕규가 관계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왕규는 염상(廉相) ⁃ 박수문(朴守文)과 함께 태조의 임조을 곁에서 지킨 세 재신 중 한사람으로서, 태조가 죽자 그 유명(遺命)을 안팎에 선포하는 중책을 맡기도 하였다. 이처럼 왕규는 태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나, 혜종이 즉위한 뒤에는 혜종의 왕권에 도전하는 가장 강력한 적대세력의 하나가 되엇다. 결국 왕규는 자기의 외손자 광주원군을 왕위에 kdksgglfu고 난을 일으키려다가 정종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뒤 정종은 왕규를 붙잡아 갑곶에 귀양보냈다가 사람을 보내어 죽였으먀, 그의 일당 300여 명도 아울러 처형하였다. <참고문헌>『高麗史』: 『高麗史節要』:『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