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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축(이기축) : 1589년(선조 22) ~ 1645년(인조 23)
하남문화원 │ 2014-06-01 HIT 2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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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희열(希說)이다.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의 8대손이고, 수군절도사 완원군(完原君) 이경유(李慶裕)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옥구현감 고언명(高彦命)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비범하여 궁마(弓馬)로 단련한 뒤 1620년(광해군 12) 무과에 급제하였다. 당시 종형 완풍군(完豊君) 이서(李曙)가 장단부사(長湍府使)로 있으면서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유폐(幽閉)에 분개하여 반정(反正)을 모의하고 있었다. 그는 종형과 지기(志氣)가 서로 맞아 능양군(綾陽君)이 있는 곳과 장단 사이를 매일 오가면서 거사(擧事)의 연락을 맡았을 뿐 아니라, 반정 당일 장단군이 입성할 때 선봉장으로 들어왔다. 그 공으로 익사공신(翼社功臣) 3등에 책록되고, 통정(通政)으로 승계하여 금군장(禁軍將)이 되었고 이어 수별장(首別將)이 되었다. 1628년(인조 6) 9월 정사공신(靖社功臣) 가선대부로 승진하였다. 이어 다음해에는 위원군수로 나갔다가 읍민이 채삼(採蔘)한 사건으로 파직되었고, 곧 이어 호위별장(扈衛別將)·금군장(禁軍將)·오위장(五衛將)·군문천총별장(軍門千摠別將) 등을 역임한 뒤, 1635년(인조 13)에는 삭주(朔州)부사로 승진하였으나 술에 취한 것 때문에 파직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금군장으로서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왕을 호종하였고, 어영별장(御營別將)으로서 남한산성의 남문을 지켰다. 이 공으로 가선(嘉善)으로 승계하고 완계군(完溪君)으로 봉해졌다. 조선과 청의 화약이 맺어진 뒤, 그는 세자를 모시고 심양(瀋陽)에 갔다가 3년 뒤 병으로 돌아왔다. 당시 변방이 날로 위태롭고 아버지가 연로하였으므로 자원하여 삼척첨사로 갔고, 1642년(인조 20)에는 장단부사가 되었으나 어머니의 병 때문에 사양하였다. 인품이 기개가 있고 의협심이 강하며 비범하였다. 한성부 판윤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양의(襄毅)이며, 그의 사당이 하남시 상사창동에 있다.
<참고문헌>『朝鮮王朝實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