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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벽(李蘗) : 1754년(영조 30) ~ 1786년(정조 10)

하남문화원 │ 20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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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학자로 배알미리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조(德操), 호는 광암(曠庵)이며, 세례명은 세례자요한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부만(李溥萬)인데, 그의 집안은 무반으로 대대로 이름난 가문이었다. 이벽은 이익(李瀷)을 스승으로 하는 남인학자의 일원으로 이가환(李家煥)·정약용(丁若鏞 : 이벽의 처남)·이승훈(李承薰 : 이벽과 동서)·권철신(權哲身)·권일신(權日身) 등과 교유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무반으로 성공할 것을 바랬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평범한 서생으로 생애를 마쳤다. 그는 조선후기 주자학의 모순을 인식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던 가운데, 사신들을 통하여 청나라로부터 서학서(西學書)를 얻어 읽게 되었다. 당시 청나라에 와 있었던 서양선교사들과 청의 실학자 서광계(徐光啓)·이지조(李之藻) 등이 저술한 천주교서적들은 천주교 교리 뿐만 아니라 서구의 과학·천문·지리 등의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서적들은 읽고 연구하면서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수용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다. 1779년(정조 3) 권철신·정약전(丁若銓) 등과 함께 광주의 천진암(天眞庵)과 주어사(走魚寺)에서 강학회를 열었는데, 이때 그는 천주교에 대한 지식을 동료학자들에게 전하였다. 1784년(정조 8) 이승훈이 청나라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오자 그에게서 세례를 받고 정식으로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이후 서울 수표교에 집을 마련하고 천주교를 연구하고 전교하였다. 이때 권철신·권일신·정약전·정약용·이윤하(李潤夏)·김범우(金範禹) 등이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되었다. 신자들이 늘어감에 따라 교단조직과 교직자가 필요해지자 이른바 가성직자계급(假聖職者階級)을 형성하였고, 이벽은 이 교단조직의 지도자로서 활동하였다. 특히, 1785년(정조 9) 봄에 김범우의 집에서 설법교회(說法敎誨)하는 모임을 주도하다가, 이후 성균관 유생들의 척사운동(斥邪運動)에 의해 해산되었다. 이벽의 아버지 이부만이 아들이 천주교에 귀의한 것에 대해 결사적으로 반대하자, 이에 대해 고민하여 천주교 활동에 소극적이 되었다. 이벽은 1786년(정조 10) 페스트에 걸려 사망했으며, 무덤은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우산리에 있다. 그의 저서로 『성교요지(聖敎要旨)』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朝鮮王朝實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옥희, 『광암이벽의 서학사상』, 카톨릭출판사,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