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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임성(任珹) : 1713년(숙종 39) ~ 1779년(정조 3)

하남문화원 │ 20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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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천(豊川)이고 자는 성진(聖眞), 호는 수암(羞庵)이다. 임수헌(任守憲)의 아들이자 박만기(朴萬器)의 외손이며, 이몽언(李夢彦)의 사위다. 1755년(영조 31) 진사로 정시문과에 이형규(李亨逵)·박취원(朴取源) 등과 함께 병과로 급제한 뒤, 세자시강원 설서(世子侍講院說書)가 되었다. 세자가 대리청정하게 되자 그 측근에서 보필하였으며, 1758년(영조 34) 정언이 된 이후 강직한 성격으로 오랫동안 사간원의 관원을 역임하였다. 1762년(영조 38) 사서로 있을 때, 나경언(羅景彦)이 세자의 비행을 상주하자 영조가 크게 노하여 세자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때 그는 세자의 잘못을 간곡하게 빌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세자가 죽은 뒤, 그는 세자의 보필을 소홀히 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그후 다시 지평에 기용되고 교리·승지를 지내다가 1775년(영조 51)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뒷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희(忠僖)이며, 그의 묘는 하남시 초일동에 있다. <참고문헌>『朝鮮王朝實錄』 ; 『廣州郡誌』 ; 『京畿人物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