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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척(鄭陟) : 1390년(공양왕 2) ~ 1475년(성종 6)

하남문화원 │ 20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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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명지(明之), 호는 정암(整菴)이다. 증첨지중추원사(贈僉知中樞院事) 정장(鄭莊)의 증손이고, 증공조참판 정자순(鄭子淳)의 손자이며, 증호조판서 정설(鄭舌)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 姜氏)로 산원(散員) 강우(姜祐)의 딸이다. 그는 1408년(태종 8) 생원시에 합격하고 1414년(태종 14)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校書館正字)에 보직되었으며, 여러 차례 승진하여 봉상시 주부(奉常寺主簿)가 되었다. 이어 사헌부 감찰·예조 정랑·검상을 거쳐 전농시 소윤(典農寺少尹)에 승진되었고, 의정부 사인으로 잠시 옮겼다가 지승문원사가 되었다. 당시 임금의 관(棺)은 사용할 시기에 임박하여 만드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그가 조정에 새로운 의견을 내어 처음으로 장생전(長生殿)을 세우게 하였다. 1444년(세종 26) 첨지중추원사가 되고 공조·호조·예조의 참의를 두루 역임한 뒤, 1448년(세종 30) 경창 부윤(慶昌府尹)이 되었다. 1449년(세종 31) 성절사가 되어 명(明)에 갔다왔으며, 1450년(세종 32) 예조 참판이 되어 『양계지도(兩界地圖)』를 찬진하였다. 1453년(단종 1)에 가정대부에 오르고, 1454년(단종 2) 자헌대부 판한성부사에 승진되었다가, 1455년(단종 3) 외직으로 나가서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세조가 즉위하자 불러들여 지중추원사에 임명하였다. 1457년(세조 3) 본직으로 봉조청(奉朝請)이 되고, 1463년(세조 9) 양성지(梁誠之)와 함께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찬진하였다. 1468년(세조 14) 정헌대부가 되었으며, 1471년(성종 2) 부사직으로 옮겼다. 정척은 청렴·신중하였고, 또한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정밀·상세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부지런했다. 해자(楷字)와 전문(篆文)의 글씨가 정밀하고 교묘하여, 옥새와 관인의 글씨가 모두 그의 솜씨에서 나왔다고 한다. 또한 전례(典禮)와 고사(故事)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정의 의례와 제도를 찬술한 것이 많았다. 성품이 충성스럽고 효성스러워 공경(公卿)이나 오래 사귄 친구의 부음이 있을 때에는 비록 질병이 있더라도 소식(素食)을 먹었다고 한다. 한번은 세종이 병이 나서 포도를 먹고자 했으나 절기가 늦어 구할 수 없게 되자, 자기 집 마당에 있던 수정 포도를 따서 올렸다. 세종이 흡족해 하자 이때부터 해마다 포도를 진상하였다고 한다. 세조가 즉위하여 “부왕께서 정척의 청렴하고 정직함을 여러 번 칭찬한 것을 들은 것이 어제처럼 또렷하다”라 하고 예우하였다. 시호는 공대(恭戴)라 하였다. 그의 묘는 하남시 초이동(草二洞)에 있다. <참고문헌>『朝鮮王朝實錄』 ; 『廣州郡誌』 ; 『京畿人物誌』 ; 『서울六百年史』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