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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최찬식(崔讚植) : 1881년(고종 18) ~ 1951년

하남문화원 │ 20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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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찬옥(贊玉), 호는 해동초인(海東樵人)·동초(東樵)이다. 하남시 풍산동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개화기 언론인이면서 제국신문(帝國新聞)을 발행한 최영년(崔永年)이고, 어머니는 청송 심씨(靑松 沈氏)이다. 어릴 때에는 집에서 한학을 공부하여 사서삼경을 마쳤고, 갑오경장 후 1897년 아버지가 광주에 설립한 시흥학교(時興學校)에 입학, 신학문을 공부하였다. 뒤에 서울로 올라와 관립한성중학교(官立漢城中學校)에서 수학하였다. 신학문을 공부하고 문학에 뜻을 두어 1907년에 중국 상해에서 발행한 소설전집 『설부총서(說部叢書)』를 번역한 뒤 현대소설의 토대가 된 신소설 창작에 착수하였다. 『자선부인회잡지』편집인과 『신문계(新文界)』·『반도시론(半島時論)』등의 기자직을 하였고, 말년에는 뚝섬에 있는 그의 농장에서 최익현(崔益鉉)의 실기를 집필하였으나 끝내지 못하고 죽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추월색(秋月色)』(1912)을 비롯하여, 『안(雁)의 성(聲)』(1914)·『금강문(金剛門)』(1914)·『도화원(桃花園)』(1916)·『능라도(綾羅島)』(1919)·『춘몽(春夢)』(1924)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는 민족의식이나 자주독립 등의 정치적인 면보다는 애정문제, 풍속적 윤리·도덕문제에 더 관심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작품에는 신식결혼관이나 연애가 표면적으로 등장하는데, 궁극적인 주제는 고대소설적인 윤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기성사회의 윤리관을 비롯한 사회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고 개혁의 방향으로 관점을 표시한 것은 그의 작가적 자세의 중요한 일면이라고 평가한다. 즉 최찬식은 이인직(李人稙)·이해조(李海朝)와 함께 3대 신소설 작가로 불려지고 있는 만큼 초창기 한국 신문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선구자라 할 수 있다. 1951년 71세에 별세하였다. <참고문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廣州郡誌』, 『京畿人物誌』, 『하남의 脈』, 이철재, 『하남의 역사』, 1995, 류양선, 『韓國現代小說史硏究』, 民音社,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