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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문(坦文) : 900년(효공왕 4) ~ 975년(광종 26)

하남문화원 │ 20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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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초기의 고승(高僧)으로 광주인이며 성은 고(高)씨이고 자(字)는 대오(大悟)이다. 5세에 출가할 뜻을 품었곻, 그뒤 양주(楊洲) 장의사(莊義寺)의 신엄(信嚴)에게서 불경 등을 배웠으며, 15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계향이 매우 높아 고려 태조가 별화상(別和尙)이라 불렀고, 왕후가 잉태하자 순산(順産)을 기원하게 하였는데, 그로 인해 광종이 태어나자 태조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구룡산산(九龍山寺)에 머물면서 『화엄경(華嚴經)』을 강의할 때에는 새가 날아들고 호랑이가 뜰에 와 엎드려서 별대덕(別大德)이라 불렀다는 설화도 전해질 정도로 교선(敎禪)을 겸비하였다. 또 942년(태조25)에 염주(鹽州)와 배주(白州)에 메쭈기가 창궐하였을 때 그가 『대반야경(大般若經)』을 강(講)하자 벌레가 없어지고 풍년이 들었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태조에 이은 혜종과 정종 또한 그를 지극히 공경하였고, 광종은 그를 왕사(王師)로 삼고 귀법사(歸法寺)에 머물게 하였다. 특히, 그는 광종과의 관계가 밀접했으며, 광종의 불교 개혁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974년(광종 25)에 국사(國師)가 되어 가야산으로 옮겨갈 때 광종이 왕후와 백관(百官)을 데리고 전송했으며, 어의(御醫)를 보내어 병을 살피게 하였을 정도로 공경받았다. 다음해 3월 가부좌한 채 입적(入寂)하니, 향년 75세이고 법랍(法臘)61세였다. 시호는 법인(法印), 탑호는 보승(寶乘)이며,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보현사지(普賢寺址)에 탑비가 남아있다. <참고문헌>『高麗史』 ; 『朝鮮金石總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李能和, 『朝鮮佛敎通史』, 신문관, 1917 ; 金龍善, 「光宗의 改革과 歸法寺」, 『高麗光宗硏究』, 一潮閣,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