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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중(이양중) ⁃ 이양몽(이양몽) 형제의 절개
하남문화원 │ 2014-06-24 HIT 27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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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중(이양중) ⁃ 이양몽(이양몽) 형제의 절개
“여보게 석탄(石灘), 내가 형을 내쫓고 왕이 되어 막상 왕좌에 올라 앉으니, 상왕(태조)의 마음을 헤아리겠네.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도와 제왕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도록 도와줄 줄 알았는데 쓸만한 친구들은 한 사람도 내 곁에 없으니 어찌하나, 어렸을 때 막역한 친구였던 자네를 이렇게 찾은 것도 이제 마지막으로 자네 형제들의 도움이 필요해서 일세. 석탄, 나를 좀 도와주게.“
고려말 나라가 어지러울 때 개성에서 자주 만나 나라 걱정을 하던 이 두 사람은 다름 아닌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위에 앉은 태종 이방원(李芳遠)과 그의 옛 죽마고우 석탄 이양중이었다. 곤룡포도 벗고 평민복으로 시종 없이 홀로 이양중이 은거해 있는 마을을 찾아 이양중과 함께 천렵을 하고 막걸리를 마시며 강가 자갈밭에 막을 치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마의 뜻은 알만 합니다. 그리고 지금 마마의 심중도 듣지 않아도 짐작을 하겠습니다. 소인을 옛 친구로 대하여 주심에 송구함도 또한 느낍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이라도 마마를 도와 이 나라 이 백성의 평안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상왕께서 고려조를 무너뜨리고 나라를 세울 당시 두문동(杜門洞) 70현(賢)의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려조가 망했더라도 우리는 이 나라의 백성이지 않습니까. 고려왕이 부패하고 무능했다면 그것을 고쳐 나라를 평안케 함이 신하로서의 도리인데, 왕좌를 뺏고 나라를 없애고 다시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고 지금 편안한 바가 무엇이 있습니까? 상왕 자식들간에 왕권싸움으로 피를 흘리고 상왕 자신이 피난민이 되어 있는 현실은 고려말에 비해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좋아진 것입니까? 한 신하에게 두 임금이 없음은 천하의 진리인 바, 선대부터 고려왕조의 녹을 먹은 우리 집안이 지금 나서서 벼슬을 한다면 우리는 자식들에게 군자의 도를 가르칠 길을 잃게 되고 말겠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어허 석탄, 이 자리에서만은 마마니 하는 경칭은 쓰지 마세. 그저 평범한 평민과 다름없으니 옛날과 같이 유덕(遺德 : 이방원의 자)이라 불러주게. 오늘만은 나도 해방이 되고 싶네. 그렇다면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 밤새 실컷 술이나 먹고 지내세.”
이렇게 하여 태종 이방원과 이양중은 밤새도록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옛날 이야기로 밤을 지샜다. 태종이 환궁을 하니, 신하들이 궁금하여 물었다.
“마마, 어제 이양중과 이양몽을 만나신 결과가 궁금하여 여쭙니다.”
“음, 그들의 마음은 돌이킬 수 없겠네. 이제 경들이나 이 나라 억조창생을 위해 짐을 도와 노력해 주기 바라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오나 이양중·이양몽 형제가 마마가 직접 만났음에도 거역함은 대역의 죄인 줄로 압니다. 그들을 살려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잡아서 능지처참함이 옳을 줄로 압니다.”
“아니다. 상왕께서도 고려왕조를 무너뜨리시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실 때 많은 석학들을 없앴음을 무척 후회하셨느니라. 공연히 민심을 어지럽힘이 없도록 하라. 그리고 이양중은 짐의 막역지우로서 그 덕이 고매한 자로 비록 나를 직접 돕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나라를 어지럽히는 일은 하지 않을 자이다. 그대로 편히 살면서 덕을 펴도록 함이 좋을 줄로 아니 명심하기 바라노라.”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한편, 태종과 헤어진 이양중은 동생 이양몽과 만나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다.
“형님, 아무래도 뒷날이 걱정되지 않겠습니까?”
“설마하니 우리 형제에게 무슨 일이 있겠느냐?”
“아닙니다. 태종
이방원은 포악한 자입니다. 선죽교에서 포은 정몽주를 죽인 일을 보아도 그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오니, 빨리 더 먼 곳으로 도망가 숨어사는 것이 선대에 욕을 뵈지 않는 도리인 줄 압니다.”
“음, 그렇기도 하다만 ….”
“형님, 망설일 때가 아닙니다. 저는 이 길로 길을 떠날까 합니다. 후일 형님도 곧 떠나시도록 하십시오. 자리를 잡은 후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마음대로 하도록 하라. 단지 우리 후세에겐 이 왕조에서 벼슬을 하지 말도록 이르라.”
“명심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석탄 이양중과 암탄 이양몽 형제는 헤어져 살게 되었다. 이양몽은 길을 떠나 원적산 아래에 숨고, 그뒤 그 일가들이 많이 살고 있는 둔촌(遁村)의 어머니 묘가 있는 수리골(지금 하남시 덕풍2동)로 옮겨 여생을 보내다 그곳에서 죽었다. 그들이 살던 고댁이는 그 형제의 높은 덕을 기려 고덕(高德)이라 부르게 되었고(지금의 강동구 고덕동), 태종 이방원과 밤새 술을 마셨던 강가는 왕이 자고 갔다하여 왕숙천(王宿川)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양중의 묘는 수 백년 동안 수리골에 있다가 이곳이 도시계획에 포함되면서 광주군 초월면 신월리로 이장했고, 이양몽의 묘는 그가 숨어 있던 원적산 아래 실촌면 이선리에 있어, 그 후손들이 그곳에 세거를 이루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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