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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산동 석탑의 석탑의 전설
하남문화원 │ 2014-06-23 HIT 43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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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산동 석탑의 석탑의 전설
370년(백제 근초고왕 25) 법화골에 예선과 갑분이라는 두 처녀가 있었다. 그들은 친형제 이상으로 우애가 깊어서 남들이 볼 때 기이할 정도로 다정한 사이였다. 점점 혼인할 나이가 되자, 양가의 부모들은 딸들을 출가시킬 준비를 하면서 은밀히 신랑감을 물색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거의 다 병정이 된 형편이라 마땅한 신랑감을 구하기 힘들었다. 당시는 고구려·신라·백제 삼국의 영토분쟁이 그칠 날이 없었던 때였는데, 싸움터에서 팔 하나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한 청년이 있었다.
혼기를 아주 놓치게 될까 걱정한 예선이라는 처녀의 집에서는 서둘러서 그 청년과 혼약을 맺었다.
“얘, 갑분아. 우리가 출가를 해도 서로의 우의를 잊지 말고 매일 만나자.”
“너는 곧 시집을 갈 텐데, 네 남편이 그걸 허락하겠느냐?”
“걱정 말아라. 어떻게 해서라도 허락을 받아 네가 우리 집에 자주 오게 하겠다.”
이처럼 두 처녀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얼마 후 예선이 시집을 갔다. 자주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시집간 여자가 어찌 친구를 자주 만날 수 있겠으며, 또한 갑분이도 시집간 친구의 집에 어찌 자주 출입할 수 있었겠는가? 하루는 예선이 남편에게 말했다.
“서방님께 간절한 청이 있습니다. 갑분이라는 가까운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언약을 하였습니다.”
“언약이란 것이 무엇이었소?”
“갑분이가 출가할 동안 우리집에 같이 살게 해주십시오.” “그거 뭐 어려운 일이겠소. 그렇게 합시다.”
이리하여 예선이는 갑분이와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남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세 사람은 매우 화목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갑분이는 예선에게 “예선아, 이대로 가면 평생 농사꾼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니, 네 남편이 글공부를 하도록 도와 벼슬길에 나가게 하는 것이 어떠니?”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예선은 남편을 설득하여 공부를 하도록 하고 예선과 갑분은 농사일을 도맡았다. 그런 피나는 노력 끝에, 남편은 마침내 벼슬길에 올랐다
이렇게 하여 고생을 면한다 싶더니, 뜻밖에 예선이 중병에 시달리다 남편과 갑분의 온갖 간호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뜨게 되었다. 예선은 죽기 전에 남편에게 “여보, 제가 먼저 가게 되니 그 죄가 큽니다. 제가 죽거든 갑분이를 아내로 맞이해서 사십시오. 갑분아, 너도 꼭 서방님과 혼인하여 행복하게 살아다오”라고 말했다. 이러한 유언을 남기고, 예선은 숨을 거두었다. 한 집에 살면서도 조금도 이상한 생각을 품지 않았던 두 사람이었으나, 하루는 남편이 갑분에게 조용히 의논하였다.
“예선이 유명을 달리할 때, 우리 두 사람에게 신신당부를 하였고 … 또 우리가 부부를 맺는데 하등 꺼려할 것이 없으니, 이제 혼례를 올림이 어떻겠소?”
갑분은 낯빛을 바꾸면서 “소녀의 말을 과히 탓하지 마십시오. 예선이 죽을 때 한 유언은 소녀의 두 눈이 떠 있는 한 이룰 수 없는 말입니다. 혹시 서방님이 다른 데 혼인을 맺으신다 해도 한사코 말려야 할 소녀이온데, 하물며 서방님과 혼인을 맺는다면 구천에 가서라도 예선을 대할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소녀는 예선과 한 평생을 같이 살려고 고락을 같이 했던 것 뿐이며 서방님을 위해서 일한 것은 아닙니다. 소녀는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몸이므로 서방님의 곁을 떠나려 합니다”라고 말했다. 예선의 남편은 “아니오, 나와 혼인을 안해도 좋으니 행여 다른 데로 갈 생각은 마시오”라고 하고는 혼인은 없던 일로 했다. 얼마 후 갑분이는 외로움과 허무감에 휩싸여 머리를 깎고 산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뒷날 마을 사람들은 예선과 갑분의 숭고한 우애를 귀감으로 삼고자 마을에 석탑을 두 개 나란히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춘궁동 3층·5층 석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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