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사랑받는 하남문화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법화동의 유래
하남문화원 │ 2014-06-23 HIT 3588 |
|---|
|
법화동의 유래
병자호란 때의 일이다. 당시 임금인 인조(仁祖)가 피난간 남한산성에서는 매일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 군사의 수는 1만 2천명에 불과했고, 청나라 군사의 수는 10만을 넘어 중과부적이었다. 그래서 성 안에서는 매일 어전회의를 열고 항복을 하자, 최후까지 싸우자는 등 의론이 분분했다.
한편, 청나라 군사들도 남한산성이 공략하기 힘든 천혜의 요새임을 알고 성안의 식량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지연전술을 사용하여 싸우려 하지도 않고 포위만 하고 있었다. 이때 원두표(元斗杓) 장군이 어전에 나와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
“연로한 장군이 어떻게 싸우겠다는 거요? 잠시 기다려보오.”
“이대로 있다가는 산성이 적에게 함락되어 모두가 참변을 당하게 될 것이므로 나가 싸움이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이렇게 임금과 원두표가 말을 주고 받기만 할 뿐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화친파의 우두머리 최명길(崔鳴吉)이 나섰다.
“소신 아룁니다. 청나라 군사를 물리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한 일인데, 이제 군사를 내어 싸움을 돋구는 것은 안됩니다. 오히려 청나라 군사의 노여움만 사게 되니 통촉하시옵소서.” 최명길의 말을 들은 임금이 벌컥 화를 냈다.
“잠자코 계시오. 어찌 싸우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오.” 임금이 크게 노하여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최명길은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만약 성이 함락되면 상감마마 이하 이 나라 백성들에게 어떤 환난이 올 것인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러자 원두표가 무서운 얼굴로 최명길을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항복을 하려거든 대감이 혼자 나가서 해 보구려. 에이, 비겁한 늙은이.”
마침내 임금은 마음을 굳힌 듯 명령을 내렸다.
“경들은 싸우지 마시오. 짐이 원장군에게 군사를 내줄 것이니 신명을 바쳐 나라를 구해보도록 하시오.”
인조는 군사를 원두표에게 주어 나가 싸우게 하였다. 원두표의 군대는 청나라 군사들의 눈을 피해 북문 밖 높은 언덕으로 올라 진을 치고 청군이 한가하게 쉬는 틈을 타 일제히 진격했다. 그러자 적군이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기에 바빴고, 온 산은 피로 물드는 아비규환이 되어 적을 섬멸하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이때 적 후방으로부터 일진의 군마가 달려오며 삼백 근쯤 되는 철퇴를 휘둘러 우리 군사들이 수 없이 쓰러져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크게 낙담한 원두표는 남은 군사를 모아 다시 진을 쳤다. “철퇴를 쓰면서 날뛰는 적장의 이름이 무엇이냐?”
“양고리(楊古利)라고 하는 자인데 아무도 그를 당해낼 자가 없습니다.”
“양고리라 ….”
비장의 말을 듣고, 원두표는 깊은 시름에 잠겼다.
이튿날 해가 떠오르자 어제의 패전을 설욕하려는 듯, 흑마를 탄 청나라 장수 양고리가 많은 군사를 이끌고 와서 싸움을 돋구었다. 미친듯 달려드는 적의 말발굽 아래 우리 군사는 무참히 죽어갔다. 이렇게 한참 싸우는데, 비장이 원두표에게 다가와 말했다.
“장군님, 어서 군사를 뒤로 물리도록 하십시오. 이대로 가다가는 전멸할 것입니다.”
“알았다. 뒷산으로 군사들을 물리도록 하라.”
명을 내린 원두표는 장병들을 뒷산으로 퇴각하게 하고, 적군이 지쳐 있는 틈을 타 전략을 새로 짜기 시작했다.
“원통하구나. 오늘밤에 모두가 죽을 각오를 하고 적진을 기습해야겠다.”
이때 비장이 자신의 계략을 말했다.
“장군님 한 가지 계교가 있습니다. 적들은 내일 아침이면 또 다시 쳐들어 올 것입니다. 이대로 적을 맞아 싸우게 되면 또 다시 패할 우려가 있사오니 밤을 새워 산 아래에 함정을 판 다음 적장 양고리를 그 곳으로 유인해 함정에 빠뜨려 쉽게 잡으면 될 것입니다.”
이리하여 날이 어두워지자, 원두표는 군사들을 독려하여 밤새도록 함정을 팠다. 날이 밝자, 청나라 장수 양고리는 군사를 이끌고 성 밑에 이르렀다. 이때 비장 서기남은 군사 오백을 이끌고 선봉으로 나가 거짓으로 싸우는 채 하다가 도망쳤다. 양고리는 삼백 근 철퇴를 휘두르면서 서기남을 바짝 추격해 왔다. 적장이 서기남을 향해 철퇴를 내리 치려는 순간 타고 있던 말의 앞발이 함정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한 사람이 만 사람을 능히 당해낸다는 청나라 장수 양고리를 잡아 죽일 수 있었다. 원래 양고리는 청나라 황제 태종의 매부로서 후금(後金)이란 나라를 세운 누루하치의 사위였다. 그는 지난날 대륙 청평에서 명나라와 싸워 쉰 여덟 번 모두 이긴 장수이며, 일찍이 몽고를 평정할 때 홀로 몽고의 여덟 왕자를 사로잡은 용장으로 누루하치가 사위로 삼은 것이다. 양고리가 태어난 곳이 법화둔(法華屯)이라는 곳이어서 그를 법화장군이라 불렀다. 전쟁이 끝난 후, 청 태종은 양고리를 추모하여 남한산성 북문 밖 전사한 자리에 원찰(願刹)을 세우고 이름을 법화암(法華庵)이라 하였는데, 그때부터 그곳의 이름을 법화동(法華洞)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