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현황
문화재명 : 집의공 박강의 묘역 및 석물
종 별 : 향토유적 제12호
소 재 지 : 하남시 초이동 산20-1
연혁
박치(朴䎩, 1441~1499)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양반 가문이었던 반남 박씨(潘南 朴氏)로, 형조․공조 정랑을 거쳐 사헌부 집의․영천 군수․충주 목사․예빈시정(禮賓寺正)․군자감정(軍資監正) 등을 역임하였다. 말하자면 행정 실무 관청의 중견 관리를 거쳐 청요직의 사헌부 집의에까지 올랐던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양반신료(兩班臣僚)였다.
묘역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조선전기 사족(士族)의 묘소 배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묘역에는 박치와 그의 부인 창녕 성씨(昌寧成氏)의 묘, 묘표와 향로석, 족석, 혼유석, 좌․우 문인석과 망주석, 그리고 2000년에 세운 비좌 개석의 묘표가 배치되어 있다.
특히 화강암 재질의 묘표는 1501년(연산군 7)에 건립되었는데, 비문의 찬자는 영의정을 역임했던 류순(柳洵, 1441~1517)이다. 비의 상태는 다소 마모되었으나, 판독에는 어려움이 없다. 비신(碑身)을 세우는 대좌(臺座)는 연잎 모양이며, 관석에는 연꽃과 보주(寶珠)가 있고, 대석에는 엎어놓은 연꽃[覆蓮]이 있다.
그런데 박치의 묘 뒤편에 그의 부인의 묘가 자리 잡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가족묘는 세대별로 위에서 아래로 순서에 따라 배치하고, 부부의 쌍분일 경우 좌우로 나란히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 묘역은 이러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따라서 박치의 묘역의 특이한 형식을 통하여 당시 사족(士族)들의 사회의식과 문화의식을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박치 묘역의 문화재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