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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렬(金弘烈) : 1886(고종 23) ~ ? 독립운동가로 1886년 12월 7일 출생으로 본적이 서울 황금정(현재의 중구 을지로3가)이다. 1919년 당시 34세로 광주군 동부면 풍산리(豊山里, 현재의 하남시 풍산동)에 주소를 갖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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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풍(淸風)이고, 자는 정부(定夫)이며, 호는 진솔(眞率)·몽오(夢梧)이다. 서울출신으로 우의정을 지냈던 김구(金構)의 증손자이며, 시직(侍直) 김치만(金致萬)의 아들이고, 교리 윤득경(尹得敬)의 사위이다. 1768년(영조 44) 문과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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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산(安山)이다. 문하시중 김위(金渭)의 증손이고, 판삼사사(判三司事) 김원상(金元祥)의 손자이며, 진주목사 김성경(金星慶)의 아들이다. 고려 말에 군부사총랑(軍簿司摠郞)을 역임한 그는 새로운 왕조 창업에 찬성하고 이성계(李成桂)를 지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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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의 소설가이다. 본관은 청풍(淸風)이고, 강원도 춘성군 출신으로 아버지 김춘식(金春植)과 어머니 청송 심씨의 8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원래 갑부의 집안이었으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떠났다. 12세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29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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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운동가이다. 호는 일가(一家)로 경기도 남양주군 조안면 능내리 봉안 마을에서 1909년 아버지 김춘교와 어머니 김공윤 사이의 5남 가운데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생활하며 우리 문화를 기독교와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어려서부터 하였다. 특히 여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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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로 광주군 동부면 망월리(望月里 : 현재의 하남시 망월동) 323번지가 본적이다. 1919년 당시 62세였으며, 농업에 종사하였고, 천주교도였다. 3월 20일경 전국에서 독립운동이 벌어지고 있음을 전해 듣고, 27일 김용문(金用文)에게 조선 독립의 시위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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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희서(具羲書) : 1871년(고종 8) ~ 1919년 독립운동가이다. 광주군 서부면 감일리(甘一里, 현재의 하남시 감일동) 246번지가 본적이고, 1919년 당시 48세였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27일 약 40여 명의 주민을 규합하여 서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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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무신으로 하남시 감일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무과에 급제하여 장연부사(長淵府使)가 되었으나, 노론과 소론의 당파 싸움을 피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광주 향리에 돌아와 있었다. 1728년(영조 4년) 이인좌(李麟佐)가 청주(淸州)에서 난을 일으켜 진천(鎭川)·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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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군 서부면 감일리(현재의 하남시 감일동) 사람이다. 선비로서 벼슬을 마다하고 일생을 부모에게 효도하며 살다가 고향에서 죽어 묘가 감일동에 있다. 천성(天性)이 아주 효성스러워 아버지가 병들었을 때 하늘에 기도하며 자기가 대신하기를 기원하였다. 아버지가 노루고기가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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